먼 이국땅에서 한국 채색화와의 조우는 흔치 않은 안복(眼福)을 누리는 일이다. 한국의 종이, 장지(壯紙)에 아교포수(泡水)를 거치고 천연 염료인 분채(粉彩)와 아교를 섞어 완성해가는 과정은 끈기와 정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채색작업 내내 섬세하게 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아교의 사용에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숙련됨과 세심함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의 숙성과정을 거쳐서일까? 짧은 붓질로 쌓아 올리듯 입혀진 색채들은 때로는 자연색의 원시적인 생생함을 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달빛 아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기도한다. 광물, 흙, 식물에서 채취된 채료(彩料)들이 화학안료로는 흉내 내기 힘든 깊이 있는 어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이 작가의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방식, 숨겨진 욕망이나 열정을 표출하는 매개체라면, 작가 권은희가 화폭을 빌어 표현하고자 하는바는 무엇일까? 구속적인 형식과 형상의 틀을 깨뜨려가는 여러 실험 과정과 휴지기를 거치면서 그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화두(話頭)는 “자유로움”이다. 현실의 답답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해체되거나 재구성된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 행위 자체가 자유로의 비상인 것이다. 이제 이 자유로움은 벽을 넘어서 외부로의 탈출과 확장, 역동과 변화에 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의 수면 아래로 침잠하거나,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관조, 반추하며, 숨겨지거나 잊혀졌던 비밀스러운 욕망이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에 있다.
작가가 창출해낸 색과 형상들은, 단순한 기억의 복사물, 과거의 재현이 될 수 없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들판과 산, 감상적인 사연이 얽힌 꽃과 나무들이지만, 시간이 때가 묻고, 다른 경험과 정서들에 의해 굴절되거나 정제되어 새로운 기억과 시제(時制)의 층을 형성한 이미지들이다. 내면에서 숙성된 기억들이 끈기 있게 쌓아 올린 붓질과, 세련되게 배치된 생면, 낯익은 소재 등을 통해 현재화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기억들로 가득찬 작가의 세계에서 낯설지 않은, 유사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논길을 따라 걷는 노란 병아리에서 유실된 동심을 읽고, 멀리 풍경 소리가 들리던 나른한 여름 한 때를 기억해 내거나, 여러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들에서 겹겹이 감추어진 자신만의 비밀스러움을 떠올릴 수 있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작가가 창조한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소통의 통로라고 한다면, 여기에 우리의 경험과 정서가 덧입혀지면서 더 이상 작가만의 사적인 공간이 아닌 새로운 의미의 열린 공간이 형성된 것이다. 시간의 경계, 피아(彼我)의 경계가 모호해진 유동적 공간에서 우리의 자유로운 유영과 정서적 체험 또한 시작되는 것이다.
도유향(미술사, NYU)
그림이 작가의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방식, 숨겨진 욕망이나 열정을 표출하는 매개체라면, 작가 권은희가 화폭을 빌어 표현하고자 하는바는 무엇일까? 구속적인 형식과 형상의 틀을 깨뜨려가는 여러 실험 과정과 휴지기를 거치면서 그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화두(話頭)는 “자유로움”이다. 현실의 답답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해체되거나 재구성된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 행위 자체가 자유로의 비상인 것이다. 이제 이 자유로움은 벽을 넘어서 외부로의 탈출과 확장, 역동과 변화에 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의 수면 아래로 침잠하거나,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관조, 반추하며, 숨겨지거나 잊혀졌던 비밀스러운 욕망이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에 있다.
작가가 창출해낸 색과 형상들은, 단순한 기억의 복사물, 과거의 재현이 될 수 없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들판과 산, 감상적인 사연이 얽힌 꽃과 나무들이지만, 시간이 때가 묻고, 다른 경험과 정서들에 의해 굴절되거나 정제되어 새로운 기억과 시제(時制)의 층을 형성한 이미지들이다. 내면에서 숙성된 기억들이 끈기 있게 쌓아 올린 붓질과, 세련되게 배치된 생면, 낯익은 소재 등을 통해 현재화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기억들로 가득찬 작가의 세계에서 낯설지 않은, 유사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논길을 따라 걷는 노란 병아리에서 유실된 동심을 읽고, 멀리 풍경 소리가 들리던 나른한 여름 한 때를 기억해 내거나, 여러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들에서 겹겹이 감추어진 자신만의 비밀스러움을 떠올릴 수 있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작가가 창조한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소통의 통로라고 한다면, 여기에 우리의 경험과 정서가 덧입혀지면서 더 이상 작가만의 사적인 공간이 아닌 새로운 의미의 열린 공간이 형성된 것이다. 시간의 경계, 피아(彼我)의 경계가 모호해진 유동적 공간에서 우리의 자유로운 유영과 정서적 체험 또한 시작되는 것이다.
도유향(미술사, NYU)